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빨간색 도장에 쓰여진 글자는 ‘전서체’라고 하는데요. 도대체 전서체가 무엇이고, 왜 이렇게 알아보기 힘든 글자를 도장에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요?
<한글설명이 붙어 있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든 전서체 관인>
전서체, 갑골문 시대부터 내려온 가장 오래된 글자
전서체는 원래 한자 서체 중의 하나로 예전부터 사용되어오던 한자의 서체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전서, 해서, 예서체가 그것인데요.
전서체는 가장 오래된 서체로, 한자의 원형인 갑골문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해서체는 한글의 궁체와 비슷한데요, 우리가 흔히 보는 붓으로 쓴 기본적인 한자의 모양입니다. 예서체는 한글의 판본체와 비슷하게 끝이 둥근 형태이구요. 오늘날은 해서체를 제외한 다른 서체는 많이 쓰이지 않고 있습니다.
<무려 반 만년의 역사를 가진 글자, 전서체. 이미지출처:뉴시스>
전서체는 중국의 상고시대인 하, 은, 주 시대(BC 6000년 이전)의 갑골문자에서 비롯된 가장 오래된 서체입니다. 상형문자에서 비롯된 한자의 원형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에 전서체를 사용하려면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해야 했는데요. 전서체를 자유롭게 구사하려면 단순히 한자를 외우는 것 뿐만 아니라 설문해자(說文解字) 같은 한자의 어원에 대해 풀이해 놓은 책 등 각종 전문서도 탐독해야 했답니다.
또 장식적인 요소가 많이 반영되어 있는 서체이다 보니 전각이나 비석에 많이 사용되기도 했는데요. 그래서 고대의 비석을 연구하는 학문이었던 금석문의 대가 ‘추사 김정희’나 그 제자였던 ‘위창 오세창’ 같은 인물들이 전서체의 대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쟁쟁한 인물들도 평생에 걸쳐 익혀야 했던 서체가 전서체였는데요. 그만큼 오랜 시간의 연구와 학습이 요구되는 어려운 글자였답니다. 그러니 일반인이 전서체를 보고 무슨 글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추사 김정희 정도 되는 대학자에게도 전서체는 어려운 글자였답니다.>
공공기관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전서체
그럼 이렇게 어려운 전서체가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직인에 쓰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전서체가 어려운 글자라는데 답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수평적인 인간관계가 중시되고, 상호간의 ‘소통’이 화두가 되는 시대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답니다. 한 사람의 국민에게 있어 관청으로 대변되는 정부나 기관은 너무나 먼 존재였고, 국가에서 다루는 공문서는 일반인이 쉽게 파악할 수 없는 ‘권위’가 서려있어야 했죠.
이는 조선시대에 발명된 훈민정음을 놔두고, 양반 사대부들이 한자 사용을 고집했던 이유와 같습니다. 손쉽게 익힐 수 있는 한글에 비해 한자는 다년 간의 학습을 통해 익혀야 했고, 그것은 일을 하지 않고 공부만 해도 되는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양반들만 가능했기 때문이었죠. 결국 한자의 이해여부는 양반과 평민을 가르는 수단이었고, 이런 차별을 통해 권위를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에 꾸준히 한자가 쓰인 것이었습니다.
물론 개화기에 들어 한글이 상용화되기 시작했지만 상하를 나누는 권위는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예전에 양반과 평민으로 구분되어 있었던 신분은, 근대에 이르러 국가와 국민이라는 상하개념으로 모습을 달리한 것이죠.
<도장에는 여러 서체가 사용되지만 중요한 도장일 경우 전서체가 자주 쓰이는 편입니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수립된 첫해인 1948년에 공문서에 사용하는 관인(정부기관에서 공문서에 사용하는 인장)을 한자 전서체로 지정했는데요. 그러다 1963년에 이르러 국가를 대표하는 공문서에 한자를 사용한다는 비난이 일자 한글로 바꾸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전서체를 선호하는 풍조는 그대로 남아 본래 한글에는 없었던 한글 전서체를 만들어 관인에 도입하게 되었답니다.
정부에서 전서체를 사용하다보니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도장을 팔 때 전서체로 만들곤 했는데요. 특히 집문서나 계약서 같은 중요한 문서에 사용되는 인감도장 같은 경우는 당연히 전서체로 파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까지 남아있답니다.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뭔가 있어보인다’는 인식 때문이었죠.
<뜻은 잘 모르지만 뭔가 있어보인다는 인식 때문에 한글 문신을 새기는 외국인과 같다고 할까요?>
공문서 관인, 63년 만에 전서체 사라져
이렇게 알아보기 어렵던 전서체 관인이 63년 만에 사라진다고 합니다.
한자 전서체에 맞춰 임의로 늘이거나 꼬불꼬불하게 구부렸던 한글 직인이 알아보기 쉽게 바뀌는 셈인데요. 그동안 “왜 알아볼 수도 없는 글자를 공문서에 사용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는 비판이 제기돼 옴에 따라 올해부터는 중앙행정기관에서 사용하는 관인부터 교체하기로 했답니다.
<훈민정음체, 기관 개발 자체 글꼴로 예(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 용산구청, 서울시 도봉구>
최근 ‘쉽고 직관적’인 것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TV 한대를 사더라도 사용법을 익히려면 두꺼운 설명서를 읽어봐야 했는데요. 요즘은 설명서를 읽는 대신, 최대한 메뉴를 간결하게 만들어 사용하면서 쉽게 익힐 수 있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스마트폰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는데요. 수많은 버튼을 없애고 액정화면을 터치하는 것만으로도 통화는 물론 검색까지 할 수 있으니 ‘직관적 디자인’의 종결자라고 할 수 있겠죠?
이렇게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 유독 공문서에서만 비효율적인 규정을 고집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관인 하나 바꾼다고 해서 당장 큰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소한 불편사항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다보면 점점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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