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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자치부가 말해요/행정자치부 소식통

[김화성 전문기자의 &joy]4대강 자전거길

차르르∼ 또르르∼ 가을 속으로 굴러간다
또르르∼ 차르르∼ 가을이 굴러 들어온다


《당신의 다리는 둥글게 굴러간다

허리에서 엉덩이로 무릎으로 발로 페달로 바퀴로

길게 이어진 다리가 굴러간다



당신이 힘껏 밟을 때마다

넓적다리와 장딴지에 바퀴무늬 같은 근육이 돋는다

장딴지의 굵은 핏줄이 바퀴 속으로 들어간다

근육은 바퀴 표면에도 울퉁불퉁 돋아 있다

자전거가 지나간 길 위에 근육 무늬가 찍힌다

둥근 바퀴의 발바닥이 흙과 돌을 밟을 때마다

당신은 온몸이 심하게 흔들린다

비포장도로처럼 울퉁불퉁한 바람이

당신의 머리칼을 마구 흔들어 헝클어뜨린다

-김기택 ‘자전거 타는 사람’에서》

차르르! 차르르! 동그라미 두 개가 굴러간다. 땅 위를 노 저어 간다. 자전거는 ‘둥글고 부드러운 쇠말’이다. 울퉁불퉁 자갈길도 바퀴살에 한번 감겼다 나오면 말랑말랑 흙길이 된다. 딱딱한 시멘트길도 고슬고슬 과수원길이 된다. 차르르! 또르르! 자전거바퀴살은 바람을 안고, 햇살을 감고, 흙을 돌돌 말아 가을을 자아낸다.

요즘 4대강 국토종주자전거길이 왁자하다. 모두 1757km 거리. 인천서해에서 한강을 거쳐 충주∼상주∼낙동강하굿둑까지 가는 사람도 많다. 아예 휴가를 내고 금강 영산강 자전거길까지 완주하는 라이더도 있다. 울긋불긋 자전거족들의 오고감이 싱그럽다. 저마다 새 모양의 헬멧을 쓰고 들새처럼, 참새처럼, 때론 까치처럼 이리저리 신나게 날아다닌다.

강변 자전거길엔 으르렁거리며 질주하는 트럭이 없다. 코뿔소처럼 콧김을 씩씩대며 돌진하는 중장비 차량도 없다. 매연 가득한 아스팔트길은 ‘어두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저 강물 따라 무심히 흘러가거나, 그 잔잔한 물주름 타고 거슬러오면 된다.

새재길 소조령∼이화령 코스는 고수들이 즐기는 구간이다. 괴산 소조령은 해발 374m의 완만한 고갯길. 해발 548m의 이화령은 서울방향에서 오르막 5km, 내리막 6km의 만만찮은 ‘깔딱 고개’다. 요즘 이화령 부근의 산하가 살짝 물들기 시작했다. 영산강 자전거길의 담양 메타세쿼이아도 황금바늘잎으로 변해가고 있다. 금강 자전거길 군산 갈대섬엔 겨울철새들이 하나둘 돌아오고 있다.

둥근 가을. 푸른 하늘이 강물에 들어앉아 가부좌를 틀고 있다. 그 옆을 두 개의 동그라미가 한 개의 동그라미를 업고 굴러간다. 쇠똥구리 한 마리가 커다란 쇠똥 두 개를 한 발에 하나씩 굴리면서 나아간다. 한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면 가을이 통째로 스며든다. 낙동강 갈대숲이 가슴에 들어와 서걱댄다. 금강 길섶 연보라 쑥부쟁이가 까르르 웃는다. 영산강 맑은 대숲바람이 살갗에 연한 소름을 돋게 한다.

자전거 페달은 우직한 곰발바닥이다. 그저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길바닥의 낌새를 읽는다. 자전거 안장은 영양의 엉덩이다. 풀밭처럼 말랑말랑하다. 마름모꼴의 자전거 프레임은 암소의 갈비뼈이다. 거친 여물을 묵묵히 되새김질한다. 톱니바퀴의 자전거 크랭크는 코끼리의 기다란 이빨이다. 거센 흔들림에도 꿋꿋하다. 그렇다. 자전거는 초식동물이다. 채식주의자이다. 얼룩말이나 사슴이다. 자전거는 잘 길들여진다. 온순하다. 그저 똑바로 앞을 바라보고 페달을 밟기만 하면 군말 없이 나아간다.

자전거는 아무리 빨라봐야 시속 30km 정도다. 그건 고수들이나 할 수 있다. 평범한 라이더들은 보통 시속 15∼20km로 달린다. 한강 팔당댐에서 충주댐까지 10시간 넘게 잡아야 한다. 고수들도 7시간쯤 걸린다. 올 땐 자전거를 고속버스에 싣고 오는 게 좋다. 고속버스엔 자전거를 최대 9대까지 실을 수 있지만 다른 고객들의 화물도 고려해야 한다.

일주일에 2번 정도 100km 이상 라이딩을 즐기는 백만주 씨(54)는 “고속버스 화물칸의 용량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단체 라이딩을 할 땐 최대 6, 7명 정도가 적당하다”고 말한다. 홍윤표 씨(55)는 “팔당∼양평 코스는 늘 라이더로 북적이므로 여주 이포보쯤 와서 즐기는 게 좋다. 이곳부터는 휴일에도 한적한 편이다”라고 말한다.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나 자전거가 되리/한평생 왼쪽과 오른쪽 어느 한쪽으로 기우뚱거리지 않고/말랑말랑한 맨발로 땅을 만져보리/구부러진 길은 반듯하게 펴고, 반듯한 길은 구부리기도 하면서/이 세상의 모든 모퉁이, 움푹 파인 구덩이, 모난 돌멩이들/내 두 바퀴에 감아 기억하리’

안도현의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