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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자치부 소셜미디어 기자단/소셜미디어 기자단 생생현장

장거리 자동전화(DDD)에서 스마트폰까지, 어떻게 변했을까?

 

71년, 장거리 자동전화(DDD) 시대 개막!
국가기록원, 2014년 3월  ‘이달의 기록’ 서비스

 

스마트폰이 없는 시간은 이제 상상하기 조차 힘들어졌죠? 하루에도 몇 번씩 습관적으로 보게 되는데요.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휴대전화와 스마트폰은 이제 명실상부한 생활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1960~70년대만 하더라도 전화는 한 대로 온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사용했던 ‘귀한 물건‘이었고, 교환원이 상대방을 연결해 줄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느린 기계‘였는데요. 이후 통신시설의 확충과 전화자동화 등의 기술 진전으로  1인 1전화 시대를 거쳐 현재, 우리나라의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약 5천 5백만 명으로 국민 1인당 한 대 이상의 이동전화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안전행정부 국가기록원은 서울과 부산 간 장거리 자동전화(DDD, Direct Distance Dialing) 개통일(71년3월 31일) 을 맞아, 3월 '이달의 기록' 주제를 ‘장거리 자동전화(DDD) 시대가 열리다!’로 정하고, 동영상 20건, 사진 13건 등 총 33건의 관련 기록물을 3월 26일부터 국가기록원 홈페이지(www.archives.go.kr)를 통해 공개합니다.

 

 


1950년대, 훼손된 통신시설 복구 시기

 

1950년대에는 6.25전쟁으로 통신시설을 복구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는데요. 전쟁으로 훼손된 통신망을 복구하고 근대식 통신시설로 바꾸기 위해 외국 기술자를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서울 중앙전화국 서국은 자동식 8천 5백 회선을, 대전전화국은 공전식 3천 회선을 복구․개설했습니다.

 

<서울 중앙전화국 서국 개국(1957) – 전화교환원 모습>

 

당시, 전화 교환원을 거쳐 통화를 할 수 있었던 옛 기록이 지금보니, 낯설게 느껴지시죠?.  


 

1960~70년대, 경제성장에 따른 통신시설 확장과 변화의 시기

 

1960년에서 70년대는 경제 성장, 소득 증대에 따라 전화 수요가 급증하면서 통신시설이 확장되었고, 통화 제도 및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서울 중앙전화국 8국 개통식(1960)>

 

서울 광화문․동대문․성북․신촌, 부산 초량의 새 회선 개통, 영등포․인천의 자동전화 개통 등 통신시설이 대폭 확충되었는데요.  

 

<전화교환원 업무 광경(1962) – 전화교환원 모습>

 

특히 지금은 볼 수 없는 전화교환원이 수동으로 전화를 연결하는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지금은 상상조차 힘든 풍경이죠?

 

<백두진 국무총리 서울-부산 간 직통전화 가동 시험(1971)>

 

또한, 전국적으로 전화 수요가 늘면서 전화를 거는 횟수에 따라 요금이 부과되는 전화도수제가 도입되고 시외통화 번호가 변경되었습니다.

 

아울러, 폭증하는 시외전화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시외통화를 장거리 자동전화 방식으로 전환되었는데요. 즉, 1971년 서울과 부산 간 장거리 자동전화 방식이 개통되면서 전국 전화자동화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1980년대, 통신 선진국 도약 시기

 

1980년대에는 농촌까지도 전화 자동화와 통화권 광역화가 이루어지고, 1천만 전화 회선이 공급되어 1가구 1전화 시대를 맞는 등 통신 선진국으로 발돋움했습니다.

 

 

< 전화 1천만 회선 돌파 기념식(1987)>

 

시외전화 자동화는 1971년 서울~부산 간 DDD 개통을 시작으로 1987년 전국으로 확대․완료되고, 전화가입 회선도 1천만이 넘어서는 등 전화는 생활필수품으로 대중화되었습니다.

 

 

1인 1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시대,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전화 할 수 있지만, 불과 몇 년 전만해도 공중전화 앞에 줄서서 차례를 기다려 통화 해야 할 정도로 전화 보급률이 낮았었는데요. 이번 우리 나라 전화의 변천 모습을 담은 옛 기록을 통해, 우리나라가 어떻게 통신강국으로 성장했는지, 그 과정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통신발전에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