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의 탄신일을 아시나요?
충무공 이순신의 탄신일을 아시나요?
-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4월 「이달의 기록」 주제로 충무공 이순신 선정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중 한 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입니다. 영화 명량으로 인해 이순신장군의 업적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구요.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그렇다면, '충무공 이순신의 탄신일을 아시나요?' 기념일 중 유일하게 특정 인물이 태어난 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할 만큼 충무공 이순신은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구국의 영웅입니다. 정부는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인 4월 28일을 이순신 장군의 애국과 충의를 전승하고 민족자주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1967년 기념일로 제정하였고, 1973년에는 법정기념일에 포함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소재 역사소설 집필, 기념우표 제작
▲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소설 '이순신전'(1908, 한국언론진흥재단 소장)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을 계기로 4월 '이달의 기록' 주제를 “충의로 바친 일생,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다.”로 정하고, 소장 기록물 뿐 아니라,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해군사관학교박물관, 한국언론진흥재단 소장 기록물까지 한자리에 모아 27일부터 국가기록원 누리집(www.archives.go.kr)을 통해 공개합니다. 이번에 제공되는 기록물은 동영상 8개, 사진 21장, 문서 1건, 우표 3장, 고신문 1건, 유물 10건 등 총 44건으로 이순신 장군에 대한 현양사업 및 유물·유적 관련 기록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 해군 창설 10주년 기념우표(1955) 2. 한산대첩 제370주년 기념우표(1962) 3. 현충사 중건 중공 기념우표(1969)
특히, 서비스 기록물 중 1908년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되었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소설 ‘수군의 제일 거룩한 인물 이순신전’은 국권 상실의 위기에 처한 가운데 민족적 영웅의 출현을 열망하고 있었던 점에서 주목할 만한데요. 아울러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 현충사의 모습이 실린 기념우표도 이색적입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현양사업 꾸준히 전개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현양사업은 이순신 장군에게 높은 관직을 부여하거나, 사당을 건축하고 책자를 발간하는 등의 방식으로 그의 사후부터 꾸준히 전개되었습니다.
인조 : 1643년 이순신에게 ‘충무공’이라는 시호를 내림
현종 : 1663년 남해와 통영에 있는 이순신 사당에 ‘충렬사’라는 편액을 내림
숙종 : 1632년에는 충청도 유생들이 조정의 허락을 받아 아산에 사당을 설립
1707년 사당에 ‘현충사’라는 현판을 내림
1. 충무공 증시교지(1643) 2. 영의정 증정교지(1793) 3. 정조 어제신도비(1794) - 문화재청 현충소 관리소 소장
특히, 정조 시대에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추모 사업이 절정에 달해, 1793년에는 “충무공처럼 충성심이 뛰어나고 혁혁한 무공을 세웠음에도 그 사후에 아직 영의정으로 추증하지 못한 것은 실로 잘못된 일”이라며 이순신을 영의정에 추증하는 교지를 내렸고, 1794년에는 친히 비문을 내려「어제신도비」를 세웠으며, 1795년에는 이순신 장군에 관한 각종 기록들을 엮은 「이충무공전서」를 규장각에서 간행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민족적 영웅으로 부각, 다수 전기 발간
1. 리순신 실긔(1925) 2. 신동아에 실린 현충사 중건 화보 기사(1932) - 문화재청 현충소 관리소 소장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이순신 장군은 나라를 구한 민족적 영웅으로 부각되기 시작하며 다수의 전기가 발간되기도 했는데요. 대표적으로 단재 신채호 선생은 1908년 「대한매일신보」에 ‘수군의 제일 거룩한 인물 이순신전’이라는 역사소설을 연재했고, 소설가 최찬식은 1925년에 '리순신 실긔'를 저술 했습니다.
한편, 1931년에는 충무공 종가의 가세가 기울어 이순신 장군의 묘소와 위토가 경매로 일본인에게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이충무공유적보존회’가 조직되어 동아일보사와 함께 성금을 모금했는데, 불과 한달 여 만에 충무공 종가 빚 2,400원의 약 7배에 달하는 16,000여 원의 성금이 모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유적보존회는 충무공 종가의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1932년 현충사를 중건, 당시 우리 국민들은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도 구국의 영웅을 지키고자 하는 민족 혼을 발휘하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구요.
광복이후, 이순신 장군 민족적 성웅으로 추앙
1. 이순신 영정(이상범作, 1932,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소장) 2. 이순신 장군 영정(장우성 作. 1953, 문화재청 현충소 관리소 소장)
광복 이후에는 나라를 부흥시키기 위한 정신적 지주로서, 이순신 장군을 민족적 성웅으로 추앙하는 사업이 진행되었는데요. 1952년 진해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이순신 장군 동상 제막식이 열렸고, 1953년에는 장우성 화백이 그린 이순신 장군 영정의 봉안식이 현충사에서 거행되었고, 이 영정은 1973년에 표준 영정으로 지정되어 화폐와 교과서 등에 널리 쓰여졌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이죠?
1.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제막식-서울(1968) 2. 이순신 장군 유적-현충사 본전(1969)
3. 진남관 전경- 여수(1970) 4. 진남관 충무공 이순신 동상-여수(1970)
1966년에는 박정희 前 대통령의 특별지시에 의해 충남 아산 현충사의 성역화 사업이 추진, 1968년에는 서울 광화문에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충무공 동상 건립, 1970년대에는 한산도 제승당 여수 진남관 등 충무공 유적 정화사업이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1980년 해군에서 임진왜란 당시 원형을 그대로 복원한 거북선을 최초로 건조했으며, 1998년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맞아 충남 아산에 동상 건립을 추진하는 등 기념사업은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위인인 이순신 장군 관련 기록을 통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업적과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고, 우리 또한 나라사랑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