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과 손님 공감하는 이야기꺼리를 판다
“5월인데 참 덥죠? 오늘은 신나는 음악들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리고는 서울 남문시장 상인회 분들을 모셔볼게요. 못골시장의 활기찬 모습을 배워가려고 찾아주셨답니다. 손님들이 부러워하는 못골시장 상인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지난 5월 2일 수원 못골시장에서 ‘종로떡집’을 운영하는 29세 청년 이하나씨의 차분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시장에 울린다. 평일 낮인데도 시장골목에는 남녀노소 손님들로 붐볐다. 여대생 두명이 ‘지동꽃집’에서 꽃을 고르는 동안 점심시간을 틈타 찾아온 30대 직장인이 ‘아들네만두’ 가게에서 산 먹거리를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저녁거리를 준비하는 50대 주부, 며느리 부탁으로 장을 보러온 60대 할아버지, 각기 다른 손님들로 뒤섞인 시장은 ‘활기차다’는 표현 그대로였다.
수원 시민들은 시내 22개 전통시장 중 대표 시장을 들라 하면 못골시장을 꼽는다. 1975년 문을 연 못골시장은 현재 90여 개의 상점이 활발히 영업 중이며 전통과 현재가 어우러진 모범적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곳곳에 대형마트가 들어서 여느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쇠락의 기미를 보이던 못골시장이 중흥기를 맞은 것은 지난 2008년 9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진행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 즉 ‘문전성시프로젝트’에 선정된 이후다. 못골시장이 전국 1천2백여 개 전통시장 중 가장 먼저 프로젝트 시범 시장으로 뽑힌 이유는 시범화 작업에 적절한 골목형 시장이라는 것과 상인회가 활성화돼 있어 사업을 추진하기 쉽기 때문이었다.
못골시장은 이제 ‘이야기를 파는 전통시장’으로 거듭났다. 시장길을 넓히고 상점 내부와 간판을 재정비하는 현대화 사업은 물론 특색 있는 시장으로 자리 잡기 위해 외부 전문가들과 시장의 모든 상인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상인회 총무를 맡았다가 지금은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 사업을 하는 단체 ‘시장과사람들’ 대표인 김승일(36)씨는 “못골시장의 장점은 지속적이고 자발적인 상인 활동에 있다”며 “사업이 끝난 후에도 ‘못골문화사랑’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예산을 확보하고 사업을 기획한다”고 말했다.
현대적 시설을 갖추는 건 기본이다. 어지러운 좌판들을 정리하면서 중앙 길목이 양옆으로 1미터 늘어났다. 차를 갖고 오는 손님들을 위해 상점에서 1만원 이상 물건을 사면 1시간 무료주차권을 제공했다. 쇼핑을 하다 휴식을 취할 수 있게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못골휴식터’도 만들었다. 못골시장 상인회 이충환(40) 회장은 “손님들이 일부러 전통시장을 찾지 않는다”며 “‘못골시장에 오면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못골시장이 취한 전략은 ‘이야기’다. 김승일 대표는 “그냥 물건만 사가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고 시장을 친숙하게 느끼게 하는 게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며 사업 계획을 설명하고 “처음부터 상인들이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성공 이유를 밝혔다.
‘충남상회’란 간판에는 자전거가 그려져 있다. 25년간 손님들이 원하는 곳이라면 언제나 물건을 싣고 배달한 낡은 자전거가 주인의 자랑이기 때문이다. 이충환 회장은 “손님들이 와서 ‘자전거가 그려져 있네요?’라고 물어보면 상점의 역사를 얘기하게 된다”며 “그러면서 손님과 주인이 가까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손님과 상인 사이의 이야기만큼 상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만드는 일도 중요했다. 이충환 회장은 “못골시장에는 대를 이어 영업하는 가게가 많다”며 그 이유를 “상인들 간에 소통이 잘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매주 월·화·목·금요일 오전 11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되는 ‘라디오스타’의 DJ는 못골시장 상인들이다. 못골시장의 소식을 전하고 음악을 들려주며 못골시장의 분위기를 밝게 만든다. 매달 6백부 정도 발행되는 ‘못골시장 이야기’는 상인들로 구성된 못골기자단이 만드는 신문이다. 여성 상인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줌마불평합창단’은 못골시장의 마스코트가 됐다. ‘못골밴드’는 매주 목요일마다 야외공연을 한다.
다양한 사업 추진에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시장의 나이가 어려지기 시작했다. 4년째 ‘못골휴식터’를 운영 중인 박선자(48)씨는 “4~5년 전만 해도 50대가 젊어 보일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40대 장년층은 물론 20~30대 청년들도 시장에서 자주 눈에 띈다.
김승일 대표는 36세로 부부가 아버지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이하나씨는 아직 20대다. 그는 “나이 어린 사람이 전통시장상점 주인이라는 것이 신기하다”는 말에 “여기에는 비전이 있다”며 “아이디어가 있고 사람들이 있는 못골시장에 투자하는 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원래 못골시장은 수원뿐 아니라 용인, 화성 등지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이었다. 한때 흩어졌지만 이제는 전국 각지에서 못골시장의 단골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충환 회장은 “멀리에서 버스를 타고 ‘못골시장이 어떤 곳인지 한번 보자’고 왔다가 택배로 물건을 주문하는 단골들도 있다”고 말했다.
5월 2일 서울 남문시장 상인회에서 못골시장을 벤치마킹하러 방문했다. 이충환 회장은 “흔히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어야 전통시장이 살아난다고 하는데 못골시장은 그 추상적인 말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곳”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출처 - 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