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엄홍길'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불경 '숫타니파타' 중 -
3월에 들어선 첫 번째 월요일,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산악인 엄홍길 대장(52)을 만났습니다. 행정안전부 직원 특강 전 잠깐 엄대장님과 짧은 인터뷰 시간을 얻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인사에, 불교식 인사인 합장으로 대신하는 엄 대장님.
엄대장님의 합장 인사를 히말라야식으로 해석하면 '당신을 존종합니다. 두 손바닥이 합쳐지듯, 우리 함께 공존합시다' 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작은 키(170cm쯤 될까요?)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머리, 추위와 바람에 거칠어진 피부속에 엄대장님의 눈빛은 인자했지만 날카로워 보였습니다. 언제가 다른 인터뷰에서 "산악 원정대의 위계질서는 전쟁터보다 더 하다. 대장의 말 한마디나 판단에 따라 팀원들의 목숨이 달려있다. 나는 그들을 살릴 의무가 있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눈 앞에서 벌써 10명이나 되는 동료, 팀원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지금 이렇게 살아있지만, 지금 저 차가운 에베레스트 빙하속에 누워있다고 해서 이상할게 없지요. 제게 있어, 삶과 죽음은 찰나의 순간일 뿐이죠"
산에서 뛰어놀던 유년 시절의 추억
엄홍길 대장이 산의 매력에 빠진 것은 세살 때 부터 라고 합니다.
부모님이 산 중턱에 집을 짓고 등산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시작하셨기 때문에 부모님의 영향으로, 산을 놀이터 삼아 자연을 친구삼아 놀았습니다. 1년 365일 비가 오나 추우나 눈이 오나 수업이 끝나면 하염없이 산을 올라야만 집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어릴 적부터 암벽 등반하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등산장비가 익숙해지다가, 고교 졸업 후 설악산 화운각대피소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 후 해군 수중폭파대(UDT)에 입대, 2~3일에 한번씩 30KG이 넘는 짐을 지고 설악동에서 화운각대피소까지 걷는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산에 맞는 체력을 키우게 됩니다.
산에 대해 어느 정도 단계가 지나가면서 생각의 사고도 커지게 되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습니다. 바로 히말라야 라는 거대한 세상을 말입니다.
△ 사진 제공 : 에베레스트 등정 사진 (엄홍길 휴먼재단)
히말라야 신이여, 저를 받아 주소서!
엄홍길 대장의 등산 스토리는 손에 땀을 쥐는 스릴있는 이야기였습니다. 100% 리얼 상황에 삶과 죽음, 혹환의 추위... 이보다 더 한 영화가 있을까요?
1985년 겨울, 그는 히말라야의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히말라야의 동계시절은 상상 이상으로 소름끼치는 곳이었습니다.
한명도 히말라야 등산 경험이 없는 '오합지졸'로 놀림을 받던 팀을 이끌고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산이라면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산은, 자연은 자만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습니다.
몇 번에 실패끝에 고지가 바로 눈 앞에 보이는데 셀파가 오는 도중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죽은 이의 얼굴이 떠올라 '히말라야는 끝이다. 다신 올라가지 않겠다' 다짐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운명처럼 자신을 부르는 히말라야에 다시 가게 됐고 결국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엄 대장은 자신이 이끈 팀마다 실패와 좌절을 거듭했지만 실패를 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비를 통해 또 다시 도전, 도전을 반복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목표를 향한 단결된 팀원 정신"과 "긍정적인 사고"를 꼽았습니다.
△ 사진 제공 : 얄룽캉 등정 사진 (엄홍길 휴먼재단)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 "다시는 산에 오르지 못할 것"
모든 산이 어렵고 고통스러웠지만, 안나푸르나는 특히 그랬습니다.
앞서 걷던 셀파가 크레파스에 빠지면서, 그 로프가 제 발목을 휘감았고 왼쪽 발목이 돌아가 버렸습니다.
순간 억지로 발목을 맞추고 다시 걸으려고만 했습니다. 동강이난 뼈를 억지로 맞춘다고 걸을 수 있었을까요?
그야말로 성공에 눈이 멀었던 거죠. 결국 죽음의 하산길에 올랐고 헬기로 한국에 수송돼 치료를 받았습니다.
의사는 그랬습니다. "당신, 앞으로 산은 절대 탈 수 없다"고.
하지만 산을 가지 못한다면 제가 엄홍길입니까. 저는 없는 사람입니다.
5개월만에 스틱을 잡고 삼간산에, 10개월만에 안나푸르나에 다시 올랐습니다.
의사가 말하더군요 "앞으로 휠체어 생활하고 싶지 않으면, 다시는 산에 가지 말라"고. 하지만 전 갔습니다.
그리고 4전5기 끝에 등반에 성공했습니다.
△ 사진 - 네팔 타루푸 초등학교 <휴먼스쿨> 설립 (엄홍길 휴먼재단)
'고려청자가 아름다운 이유', 과정 없는 성공 없다
해발 8000m가 넘는 산을 등반하려면 처음부터 산에 조금씩 적응해 가야 합니다. 고산병을 막기 위해 조금씩 아래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산에 적응하는 과정입니다.
고난을 통과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위기없이, 열정없이 이룬 성공이 아룸다울 수 있을까요.
고려청자가 아름다운 이유는, 2000도에 달하는 고온을 통과하기 때문에 그 빛깔, 그 색깔이 나올 수 있습니다.
'무섭다, 두렵다, 포기하겠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이겨내십시오.
가장 두려운 존재는 자연도, 환경도 아니라 늘 제자신이 무너지는게 가장 두려웠습니다.
인생의 또다른 도전을 위해 노력중입니다.
17봉 등정과 함께 '엄홍길 휴먼재단'을 설립해 히말라야 산자락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네팔의 오지에 두 번째 어린이 학교를 열었습니다. 엄홍길씨는 지난해 1차로 네팔 쿰부히말라야 지역의 팡보체(4060m)에 1호 어린이학교를 완성한데 이어 23일 네팔 오지 중 하나인 타르프 지역에 2호 학교를 준공시켰습니다.
엄대장님은 말합니다 "여러분도 인생의 힘찬 도전을 하길 바랍니다. 힘찬 도전만이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 사진 - 강연 전 엄홍길씨가 전해준 친필싸인 등산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