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과의 전쟁 25년, 짝퉁 추격자를 만나보니..
2006년 8월 국내에 가짜 명품시계를 대규모로 수입·유통시켜 온 밀수조직이 검거됐다.
적발규모는 자그만치 1조 5300억원. 그들의 아지트이자 공장으로 사용되어 온 서울의 한 가정집에서는
로렉스, 까르띠에, 샤넬 등 명품브랜드의 ‘짝퉁’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시장에 그대로 유통됐다면 상표업체는 물론
소비자들까지도 피해가 막심할 터였다. 이 같은 대규모 짝퉁사건을 적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들을 두 달 동안의
끈질긴 미행과 잠복, 추격해 온 한 세관 공무원이 있었다.
#1. 끈질긴 추격, 그리고 검거
검거 두 달전인 2006년 6월, 인천세관에 근무하던 고석범 인천공항세관 계장(당시 반장)은
평소 알고 지내던 ‘정보원’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누군가 대규모로 가짜 명품시계를 밀수입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제보였다. 하지만 정보원이 가진 정보는 충분치 않았다. 그저 밀수업자로 의심되는 사람의 얼굴만 알고 있을 뿐 이름과
주소도 모르고, 확실한 물증도 없었다. 그러나 관세청 조사계에서만 20여년 근무한 고 반장에게 이는 곧 출동 신호였다.
이후 고 반장과 동료들은 정보원이 알려준 용의자를 쫓아 수도권 일대를 종횡무진했다. 용의자의 아지트를 찾기 위한 미행은
예사였고, 밤낮없는 잠복근무가 계속됐다. 잠복과 미행, 그리고 추격… 남들은 강력계 형사들이나 할 일이라 생각하겠지만,
관세청 직원인 그에게도 이는 오래된 일상이었다.
그러기를 두달여. 2006년 8월 드디어 용의자의 아지트이자 밀수품의 주된 저장창고로 사용된 일명 ‘메인 창고’의 위치가 파악됐다.
겉보기에는 서울시 중구 남창동에 위치한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하지만 내부에선 가짜 명품시계들이 무더기로 발견됐고,
무엇보다 그동안 이들이 서울 남대문시장 등을 중심으로 유통시켜온 밀수품들의 거래내역이 담긴 장부가 발견됐다.
두 달여간의 끈질긴 추격이 드디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2006년 인천공항세관에서 적발된 가짜 해외유명상표 시계들 자료사진 - 연합뉴스>
#2. 그는 최고의 "짝퉁 추격자"
추격과 잠복근무로 점철된 공직생활 25년 올해 3월 인천공항세관으로 소속을 옮긴 고석범 계장은 지난달 25일 행정안전부가
실시한 ‘대한민국 최고기록 공무원 선발’ 공모대회에서 ‘유명상표 가짜물품 검거 최고 공무원’ 으로 선정됐다.
국내에서 일명 ‘짝퉁’ 상품을 가장 많이 찾아낸 공무원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관세청의 조사정보시스템이 가동돼 검거실적이 체계적으로 집계되기 시작한 2001년 이래 고 계장은
2009년 현재까지 모두 133건, 돈으로 따지면 약2조 4046억 원 상당의 짝퉁 상품 을 찾아냈다.
짝퉁 상품 찾기 분야에서는 명실상부 일인자인 셈이다. ‘2006년 남창동 검거’는 단일 실적으로는 최대규모였다.
짝퉁 상품 유통을 막는 일이 중요한 까닭은 상표권자들의 손해를 막고, 위조 상품으로 인한 소비자를 예방하는 것도 있지만,
그대로 둘 경우 국가의 명예가 훼손되고 나라간 마찰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 계장은 지금껏 이 일을 해오면서 별로 어려운 점은 없었다고 소회했다.
다만 조사 인력의 부족 속에서 장기간의 잠복근무 등으로 고생하는 직원들이 안쓰러울 뿐이라며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고생하는 동료들을 먼저 걱정했다.
고 계장은 “한번은 국내에선 수입이 금지된 찹쌀을 살겨와 섞어 중국에서 밀반입해 온 일당을 찾아낸 적이 있다”며
“이후 이들이 들여온 밀반입 물량이 정확히 얼마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직원들이 5일 동안 직접 밀수업자들이 쓰던
공장으로 출근하며 살겨와 찹쌀을 분리하는 공장기계를 돌린 적이 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넉넉한 인상 속에 숨겨진 매서운 눈초리 현재 우리나라는 수출입 상품의 90% 이상에 대해 세관 검사를 생략하고 있다.
물류 흐름을 원활하게 해 보다 신속하게 수·출입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지이다. 하지만 이를 악용해 갖가지 수법으로
밀수품을 취급하는 이들이 문제. 고 계장은 “국내로 들어오는 짝퉁 상품들의 대다수는 콘테이너로 들여오는 항만 물량”이라며
“정상 물품에 밀수품을 숨겨오는 일명 ‘알박기’, 앞쪽에 정상 물품을 놓고 뒤쪽에 밀수품을 배치하는 ‘커튼치기’,
콘테이너 밑바닥을 뜯어내고 밀수품을 숨겨오는 ‘밑창 은닉수법’ 등이 동원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지속적인 정보분석과 정보원 관리 등을 통해 우범자들을 사전에 파악하고 적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고 계장의 말이다. 현재 고 계장을 비롯한 관세청 조사과 직원들은 격일 24시간 근무를 하고 있다. 24시간 계속되는
물류 흐름 속에서 한시라도 감시의 눈초리를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세관의 고석범 계장은 ‘짝퉁’ 상품업자에겐 ‘저승사자’로 통한다.
하지만 평소 그는 누구보다 선한 웃음을 가졌다.
#3. 짝퉁엔 저승사자, 평소엔?
올해로 56세, 공직생활 25년을 맞는 고 계장은 웃을 때와 웃지 않을 때의 인상이 무척 다르다.
웃을 땐 영락없는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이지만, 말없이 무언가를 응시하며 침묵을 지킬 땐 그 누구보다 매서워지기 때문이다.
고 계장은 “예전에는 모든 통관 물품에 대한 세관 검사가 이루어졌지만, 선진관세행정이 도입된 이래 지금은 소수의 의심가는
이들만 검사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곧 수·출입업자를 믿겠다는 의미이자, 그 믿음을 배신할 때는 철저히 처벌하겠다는 의미” 라고 말했다.
오늘도 수많은 여행객과 수출입 화물들이 국경, 그리고 세관을 지나간다. 법을 지키는 다수의 선량한 이들에게는 ‘환영인사’가
건네지지만, 법을 어기는 소수의 무법자에게는 가차없는 처벌이 내려지는 현장이다. 25년간 짝퉁 업자들을 단속해 온 고 계장은
바로 이 현장에서 평소엔 환한 미소로 고객들을 접하지만, 법을 어긴 자에게는 ‘엄격한 법 집행자’인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홍보지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