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갈색 털을 가진 고라니는 사슴과 포유동물이다.
암수 모두 뿔이 없고 끝이 구부러진 긴 송곳니가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산 오대산 설악산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척추에 해당하는 백두대간에 많이 서식한다. 단독으로 혹은 2∼4마리가 무리지어 생활하며 배설물을 남기거나 나무의 껍질을 벗겨놓는 식으로 자기 영역을 표시한다. 이들은 처음 살던 곳에서 멀리 떠나지 않고 되돌아오는 귀소성(歸巢性)을 갖고 있다.
백두대간 이화령의 생태통로에 설치한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결과 고라니들이 이동하는 모습이 지난해 말 포착됐다. 눈밭 여기저기 고라니의 배설물과 발자국도 남아있었다. 이들의 출현은 지역 생태계가 회생하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신호다. 가파른 곳에 생태통로가 설치돼 동물의 이동이 어렵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으나 다행히 고라니들이 돌아왔다.
1925년 일제는 신작로를 만든다며 백두대간 본줄기에 자리한 해발 548m 이화령의 허리를 끊어버렸다. 정부는 일제강점기에 끊긴 백두대간의 생태 축을 연결하는 첫 사업으로 지난해 11월 48억 원을 들여 이화령 복원사업을 마쳤다. 87년 만에 충북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와 경북 문경시 문경읍 각서리를 잇는 터널이 생겨나고 그 위로 길이 80m, 폭 50m의 생태통로가 조성됐다. 이화령에 이어 앞으로 백두대간이 단절된 구간 12곳도 순차적으로 복원할 예정이다.
생태통로는 야생동물들이 찻길을 건너지 않고도 서식처를 오갈 수 있도록 만든 길이다. 도로와 댐 등의 건설로 인해 단절된 야생동물의 이동로를 다시 연결하기 위해 만든 인공구조물과 식생(植生)으로 이뤄져 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50년대 프랑스에서 최초로 생태통로를 설치했다. 이후 독일 스위스 프랑스 등 유럽에서 야생동물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터널과 육교 형태의 생태통로를 만들었다. 네덜란드에는 길이가 800m에 이르는 생태통로가 있다. 한국에서는 1998년 지리산 시암재에 처음 설치됐다. 인간의 삶에 여유가 생겨야 동물의 삶도 돌볼 수 있는 모양이다.
야생동물들이 도로를 건너다 자동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를 이른바 ‘로드킬(Roadkill)’이라고 한다. 한국도로공사의 조사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중앙선 중부선 호남선 등 고속도로에서 1600여 건의 로드킬이 발생했다. 피해 동물의 종류는 고라니가 58%로 가장 많았다.
생태통로는 환경을 보호하는 효과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동물이 충돌하는 돌발사태로 생길 수 있는 인명사고를 예방하는 기능도 한다. 인간의 개발 욕심 때문에 야생동물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은 나날이 줄고 있다. 생태통로 조성은 사람들 때문에 고통받는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기사출처 : 동아일보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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