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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말 안되는 소리가 바꾸는 세상

 

[기고] 말 안되는 소리가 바꾸는 세상

 청소년들이여! 내꿈을 가져라

 

최민호 행정안전부 소청심사위원장

 

 


청소년들에게 무엇이 '되기'보다 무엇을 '하고' 싶어 하고, '큰 꿈'보다는 '남다른 꿈'을 꾸어야 한다는 데에 많은 분이 공감을 해주셨다. 하지만 정작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말하라고 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어른이 된 지금 분명히 나에게도 꿈은 있었건만, 그 꿈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안된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매일 매일을 살아온 것 같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의 꿈은 무엇인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살아온 나의 인생..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꿈'이라는 것과 '소망'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늘 간구하고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며 산다. 가족들의 건강, 행복한 삶, 바르고 공정한 사회, 나라의 평안...

 

우리들의 크고 작은 소망과 꿈


크고 작은 우리의 소망들이다. 소망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면 이러한 소망이 나의 꿈일까?
엄밀히 볼 때 '꿈'과 '소망'은 다른 것이다.
꿈과 소망의 차이점은 그 중심에 내가 있는가, 없는가에 있다고 믿는다.
꿈은 바로 내가 주체가 되어 이루어내고 싶은 바이지만, 소망은 나와 관계없이 누구에 의하든 결과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것이다. 남북통일이 우리의 소망이라 할 때, 내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여 이루어내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나의 꿈이 될 수 있지만, 누군가에 의해 또는 상황이 잘되어 결국 이루어졌으면 하고 바란다면 그것은 소망이라는 것이다.


'꿈'에는 그 중심에 내가 있고, '소망'에는 그 중심에 내가 없다.
그러니 소망은 많으나, 내가 이루어내고 싶은 내 꿈은 모르거나 잃어버리고 사는 경우란 많은 것이다.
이상한 말이지만, 정말 내 꿈은 무엇일까?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이루고 못 이루고를 떠나서, 잃어버린 내 꿈을 찾아보자. 어떻게 찾을까.
우선 나에게는 무한한 돈이 있다고 상상한다. 그리고 무한한 시간도 가지고 있다. 신나는 상상이다. 돈과 시간이 무한히 있으니 나에게는 무한한 자유와 힘이 있다. 일을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서 자유롭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해외여행을 꼽았다.
좋다.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초호화 유람선 퀸 엘리자베스호를 타고 마음껏 전 세계를 누비며 즐기자. 물 쓰듯 돈을 쓴다. 스위스, 터어키, 카리브해.. 상상 속에서 우리는 화려한 해외여행의 극치를 맛본다. 얼마동안이나 하면 만족할 수 있을까. 100년 정도 하면 좋을까?


손사래를 치는 해외여행자들.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100년까지는 아니고, 한 5년?..'
해외여행을 마음껏 한 뒤 그 다음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돈과 시간등의 여건이 안되거나, 주위의 시선이 허락하지 않거나, 때로는 부도덕해서 못해 본 일들.
다 끄집어 내보자. 그리고 마음껏 즐겨보자.
양파껍질 벗기듯 하나하나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해 본다. 하고 싶은 일을 충족했으면 또 다음을 묻고 묻는 작업을 반복한다.

 

하고 싶은 일이라 하지만, 처음에 떠오르는 일들은 기실 우리의 꿈이 아니다. 그것은 충족되지 못한 욕구같은 것들이다. 그것은 마치 인스탄트 식품 같아서 강렬하게 먹고 싶지만, 평생 먹고 싶은 것은 아닌 것과 같다. 우리의 진정한 꿈은 너무도 깊은 맛을 가지고 있어서, 먹으면 먹을수록 오히려 더 깊은 맛이 우러난다.
그것은 생각의 바다 맨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다.

수면위에 떠있는 온갖 욕구의 찌꺼기가 상상속의 돈과 시간으로 다 충족되어 거두어내진 후에야 맑은 모습으로 서서히 드러나는 고고한 것이다.


사색에 깊숙이 잠기기 시작한다. 무엇이 하고 싶은가?
그러다가 바다 속 저 어느 곳에서 문득 하고 싶었던 일 하나가 소리 없이 떠오른다. 깊다. 맑다. 그렇다. 100년, 200년을 계속해도 그 일이라면 즐거울 것만 같다. 그것이다. 빙고!
그러나 이는 소수의 행복한 사람에게만 일어날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암흑의 바다 속에서 표류하고 만다. 모르겠다.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는 것이다.

 

직업과 천직, 하늘의 부름?


'아.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이 작업은 결코 간단하거나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나의 내면과 마주보며 대화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속의 또 하나의 나, 나는 나의 자아와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 나의 꿈은 무엇인가. 하늘은 나에게 어떤 재능을 주었는가. 누구도 답을 주지 않는, 알고 싶은 이 미지의 질문에 나 스스로 답을 찾아 ���매고 있는 것이다. 문득, 진정으로 내가 나의 내면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수없이 소통을 말하지만, 정작 나 스스로와의 소통은 없었다는 데에 나는 스스로 놀란다.


내면속의 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여간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묻고 또 물으며 귀를 기울이다가 문득 저 깊은 심연속의 나의 내면이 나에게 속삭이는 희미한 소리를 듣는다. 아주 작은 소리이지만, 그 소리는 천둥같이 크고 무서운 소리이다.


나의 양심이 말하는 목소리요, 하늘이 나에게 전하는 소리인 것이다.

영어로 직업을 vocation이라고 한다. 라틴어의 어원상 '목소리'에서 유래된 말이다. '부른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한자어로는 소명(召命)이라고 번역된다. '부르는 명령'이라는 뜻이다. 소명에 따르는 일, 우리는 이를 천직(天職)이라고 말한다.


종교개혁가 칼빈은 직업을 calling이라고 했다. '하늘의 부름'이라는 것이다. 그는 모든 직업은 하늘의 부름이니 누구라도 이 부름에 응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충실히 수행하여야 하며, 하늘의 부름이니 직업에는 귀천이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청지기 정신'이나 '맡은 자의 정신'으로 겸손하게 자기 직분을 다하여야 한다는 기독교의 직업관은 이렇게 정립된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늘의 부름을 알 수 있겠는가.
오로지 자기의 내면에서 조용히 그리고 엄숙하게 속삭이는 목소리.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바로 이것이노라고 속삭이는 소리 없는 아우성. 그것이 바로 하늘이 주신 나의 재능이고 부름이지 않겠는가!

내면과의 깊은 성찰 속에서 100년을 계속해도 싫증이 나지 않을,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면 이는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2차 대전의 영웅,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만일 천국에 간다면 첫 100년간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책만 읽겠다.'
육군사관학교에서 다른 과목은 모두 낙제해도 영어점수만은 톱이었다는 그에게 내면 속의 처칠은 늘 문학의 꿈을 속삭여 주었고, 군인과 정치인의 길을 걸었지만, 그는 이 속삭임에 귀를 멀리하지 않았다. 위대한 정치인으로서 그는 기억되지만, 그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평화상이 아니었다. 처칠은 1953년 제2차 세계 대전 회고록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문학가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내면의 속삭임은 의외의 것을 지시하기도 한다. 명성을 떨치며 성공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한 남성이 40대를 넘기며 갑자기 바이올린을 던져 버리고 요리를 하겠다며 변신을 시도한다.
중년의 위기(middle age crisis).


진정한 자아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현실에 쫓기며 중년에 이른 사람들이 어느 날 내면이 속삭이는 소리에 불현듯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이제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남의 것인 양 느껴지며, 삶에 혼돈과 허무를 느끼게 되는 회의감이 엄습한다. 외적으로 뭔가를 이룩한다는 것이 갑자기 중요하지 않게 된다. 나의 영혼이 나의 꿈을 찾으라고 일깨워주는 것이다. 이 일깨움을 무시하고 내면을 외면하면 감당하기 힘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중년의 위기는 내면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살았던 나에 대한 내 영혼의 징벌인 것이다.

 

꿈을 찾는 사람들의 아름다움

 

꿈을 찾았다 하여 인생에 무슨 유용성이 있을 것인가.
우리의 이상(理想)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이겠지만, 나��� 현실은 내 꿈과는 멀리 동떨어져 있어 꿈을 가진다 한들 소용이 없다. 하지만, 비록 우리의 현실이 내 꿈과는 반대편에 있을지라도, 꿈을 간직하며 산다는 것은 인생을 항해하는 배에서 나침반을 지니고 있는 것과 같은 효용이 있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때 우리는 피로감을 느끼기는 커녕 엔돌핀이 솟는다. 거기에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깨우치는 생이지지(生而知之)의 재능까지 보태진다면, 인생의 가장 큰 성공확률은 내 꿈을 직업으로 갖게 될 경우일 것이다. 그러니 현재가 아니라 해서 꿈을 포기할 수는 없다. 꾼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꾸지도 않은 꿈을 이룰 수는 더욱 없기 때문이다.


'맞았어. 노래가 하고 싶었지. 형편도 안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지금 이렇게 핸드폰 판매 사원이 되고 말았지만, 나의 꿈을 버릴 수는 없어...'


라고 안타까워하며 꿈을 잃지 않던 한 36살의 남자는 기적과 같이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성악가가 된다. 영국의 TV 프로그램 '브리튼즈 갓 탤런트(Britain's Got Telent)'에서 탄생한 폴 포츠 스토리이다.
또 비록 나의 꿈이 나의 직업으로 꽃피워지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인생1모작이 끝나고 2모작을 시작할 때 꿈을 나침반으로 하는 뚜렷한 방향감각으로 인해, 허무함 속에 인생의 황혼을 맞이하며 존재의 무력감 속에 빠지고 말 수많은 노후의 삶에게 꿈은 무한한 유용성을 갖는다.

꿈을 꾸어야 한다. 동물과 인간의 삶에 있어 다른 점이 있다면 동물은 살기 위해 사는 것이고, 인간은 꿈을 이루기 위해 산다는 점일 것이다.


꿈이라 하는 것은 단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나에게 주는 엄숙한 명령이자, 선사받은 소질이라는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어린이들에게는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들의 상상은 곧 꿈을 꾸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늘을 날아 별에 도달하는 말도 안되는 공상 속에서 그들의 꿈은 여기저기를 헤맨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해보면 결국 어렸을 때 꿈꾸었던 그 일이라는 것을 선명히 깨닫게 된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
라며 학원으로 아이를 내모는 철없는 엄마가 있다면 다음과 같은 한 원로 언론인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나는 앞으로 말도 안되는 생각 하지말라 라는 말은 절대로 안하겠다.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생각에 당대 최고의 석학이나 과학자들도 모두 말도 안되는 생각이라고 비웃었다. 그들이 바보였다. 결국 자전거수리공에 불과했던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를 만들지 않았던가. 말도 안되는 생각들이 결국 세상을 바꾼다. 나는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망정 그 ��람들이 나중에 손가락질 할 어리석은 바보가 되고 싶지는 않다.'

 

꿈은 위대하다. 꿈을 찾아 나서자. 지금도 늦지 않았다. 
 

최민호(twitter. @woobokaltz/ facebook @woobokaltz).

대전 출생, 한국외국어대, 연세대(석사), 단국대(박사) 졸업, 미국 조지 타운대 객원연구원, 현 행정 안전부 소청심사위원장(차관급), 행안부 인사실장, 충청남도 부지사, 기획관리실장, 저서 : 아웃 터넷(2002), 공무원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2000)

<출처: 디트뉴스 원문보기 : http://www.dtnews24.com/news/articleView.html?idxno=88618>